환경법과 개발 프로젝트에 아동권리영향평가를 요구하는 국제 기준에 비추어 보면 초광역특구법안의 허점은 분명하다. 박상혁안과 최기상안 모두 '아동'이라는 단어가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기후위기의 비용을 가장 오래 치르는 이들은 아동과 오늘 이후 태어날 미래세대다. 효율의 기준에 아동이 빠져 있다면, 그 효율은 미래세대를 착취하는 세대 간 정의 파괴다.
둘째, 돌봄의 시간을 앗아가는 법이다
초광역특구법 박상혁안에는 노동 특례가 세 개 조문(제132~134조)으로 들어 있다. 최기상안에는 이 세 개 조문이 없다. 제132조는 근로소득 상위 3%이면서 한국표준직업분류 대분류 1(관리자) 또는 2(전문가 및 관련 종사자)에 해당하는 근로자에 대해, 서면합의로 근로시간, 휴게와 휴일, 연장·야간 및 휴일근로를 달리 정할 수 있게 한다. 근로기준법 제50조부터 제56조까지에도 불구하고 적용된다. 제목은 ‘연구개발 업무 등’이지만 적용 대상은 연구직에 그치지 않고 관리자와 전문가 직군 전체다. 제133조는 특구기업 사용자가 근로자대표와 서면합의로 선택근로제 정산기간을 6개월까지 운영할 수 있게 한다. 제134조는 기간제 사용기간을 연장해 총 4년까지 쓸 수 있게 한다.
외국인투자기업에 대한 특례는 더 심각하다. 박상혁안 제77조(최기상안 제74조)는 외국인투자기업에 근로기준법 제55조에도 불구하고 무급휴일을 줄 수 있게 하고, 같은 법 제57조를 적용하지 않으며, 파견 대상 업무를 확대하거나 파견기간을 연장할 수 있게 한다. 노동 특례를 뺀 안이라고 알려진 최기상안도 이 조항을 그대로 담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이 특례가 소득 상위 3%에 직무 요건을 갖춘 근로자에 한정되고, 사회적 대화와 병합 심사로 조정된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아동과 양육자의 돌봄권 관점에서 바라볼 때 시간은 돈으로 살 수 없고, 맞바꿀 수 없는 가치다. 노동자가 자녀는커녕 자기 자신도 돌볼 수 없는 ‘시간 빈곤자’로 전락한 지역에서 누가 자녀를 낳고, 누가 미래를 꿈꾸고 설계할 것인가?
박상혁안 제133조에 따라 선택근로제 정산기간이 6개월까지 늘어나면, 24시간 가동되는 공장과 데이터센터에서 일하는 양육자는 일이 몰리는 달에 몇 달을 몰아 일하게 될 수 있다. 그때 아동의 저녁 식사와 등하원·등하교를 챙기고 아플 때 곁에 있어 줄 사람은 누구인가? 박상혁안 제132조는 소득 상위 3%의 관리자와 전문가에게 연장·야간·휴일 근로를 달리 정할 수 있게 하고, 그 합의는 사용자와 개별 근로자 사이의 서면합의에 맡겨진다. 돌봄은 그 시간을 비켜 가지 않는다. 고용이 불안정할수록 육아휴직과 돌봄휴가를 쓰기 어렵다는 것은 이미 많은 양육자가 겪는 현실이다. 지방 정주와 인구 유입을 말하는 법이 정작 그 지역에서 아동을 키우는 부모의 시간을 줄인다면 모순이다. 아동이 자라는 데 필요한 것은 도시의 GDP가 아니라 양육자와 보내는 시간이다.
윤석열 정부가 ‘주 최대 69시간’ 유연근로와 노동시간 확대를 추진할 때 과로사 강요 정책이라면서 ‘완전 폐기’를 주장했던 더불어민주당이 초광역특구법을 발의한 것은 국민 기만이고, 지방에 사는 노동자들은 노동권도 삶의 질도 포기하라는 지역 차별이다.
셋째, 교육과 의료의 공공성을 시험대에 올리고 돌봄 공백을 조장한다
법안은 특구기관과 특구기업에 건축, 토지이용, 교통, 교육, 의료, 주택공급 등 폭넓은 분야에서 개별 법률의 적용을 배제하거나 완화하는 특례를 준다(박상혁안 제18~174조, 최기상안 제18~168조). 교육 쪽을 보면, 박상혁안 제66조(최기상안 제64조)는 특구기관이 학교를 설립하는 절차를 특구계획에 담도록 하고 교육부장관 또는 교육감의 동의와 승인을 거치게 한다. 안전장치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박상혁안 제68조부터 제70조(최기상안 제66조부터 제68조)는 초·중등교육법과 유아교육법에서 대통령령이나 교육부령으로 정하게 한 사항을 지방자치단체 조례로 정할 수 있게 하고, 유아교육법상 교육부장관의 권한을 관할 교육감의 권한으로 옮긴다. 박상혁안에는 외국인학교의 입학자격을 조례로 달리 정할 수 있게 한 제72조도 있고, 최기상안에는 이 조문이 없다. 특수목적고등학교(박상혁안 제64조, 최기상안 제62조)에 대해서는 두 안 모두 초·중등교육법 제9조, 제19조, 제19조의2, 제24조, 제26조, 제29조, 제31조, 제46조를 적용하지 않을 수 있게 하고 그 범위와 한계를 조례로 정하게 한다. 박상혁안은 지방자치단체장 또는 교육감이 교육부장관의 동의를 받아 특수목적고등학교를 직접 지정·설립할 수 있게 하고, 최기상안은 지방자치단체장이 교육감에게 지정을 요청하는 방식을 택한다.
의료 쪽에서는 두 안 공통의 제60조가 특구전략사업과 관련해 의료기관을 개설한 의료법인에 의료법 제49조에도 불구하고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부대사업을 허용한다. 박상혁안에는 외국인이 설립한 법인의 병원급 의료기관 개설(제61조)과 외국인전용약국(제62조)도 들어 있다. 제61조는 지방자치단체장의 허가에 더해 보건복지부장관의 사전 승인을 요건으로 한다. 최기상안에는 제61조와 제62조에 해당하는 조문이 없다.
이 조문들은 아동의 교육과 건강에 닿는 기준을 법률에서 조례와 대통령령으로 내려보낸다. 기준이 내려갈수록 지역과 기업의 사정에 따라 아동이 누리는 교육과 건강의 수준이 달라질 수 있다. 아동의 교육권과 생명권, 건강권은 시장의 논리가 아닌 아동의 최선의 이익을 기준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돌봄 공백이다. 제안이유는 정주여건 조성을 내세운다. 그러나 두 안에서 보육과 관련된 조문은 박상혁안 제234조·최기상안 제228조(보육기반 확충 지원) 하나뿐이다. 국공립어린이집을 우선 설치 ‘할 수 있고’, 민간·가정어린이집을 국공립으로 전환 ‘할 수 있고’, 보육환경 개선을 위한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모두 재량 규정이다. 어린이집이라는 말은 이 조문에만 나오고, ‘아동’, ‘돌봄’, ‘방과후’, ‘지역아동센터’라는 말은 두 안 어디에도 없다. 일터가 들어서면 사람이 온다는 논리는 아동을 키울 돌봄 인프라가 의무로 보장될 때만 성립한다. 지역에 필요한 것은 문 닫는 소아청소년과와 어린이집, 사라지는 학교를 지킬 공공 돌봄과 교육이지, 특구 기업을 위한 예외 규정이 아니다.
넷째, 아동의 안전을 지키던 규제를 ‘특례’와 ‘간주’로 무력화한다
두 안 공통의 기본원칙(제3조)은 특구기업의 자율적 활동을 최대한 보장하되 국민의 생명·안전과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안전성 확보 조치를 이행하도록 한다. 그러나 조문의 무게는 앞쪽에 실려 있다.
제4조(두 안 공통)는 이 법의 규제특례가 다른 법률에 우선 적용된다고 정한다. 다른 법률에 더 완화된 규정이 있으면 그 법률을 따르고, 특구전략사업에 관한 법령을 새로 만들거나 고칠 때는 이 법의 목적과 제3조의 원칙에 맞도록 해야 한다. 앞으로의 규제 입법이 이 법의 틀에 맞춰져야 한다는 뜻이다. 제15조(두 안 공통)는 규제의 신속확인을 신청한 경우 관계 중앙행정기관이 30일 안에 회신하지 않으면 소관 업무가 아니거나 허가·승인·인가가 필요 없는 것으로 본다. 침묵이 허가를 대신하는 구조다. 박상혁안 제126조(최기상안 제123조)는 관할 지방자치단체장이 특구전략사업을 위해 필요하면 소음·진동관리법 제8조제1항과 제2항 등 네 개 규정을 적용하지 않을 수 있게 한다. 이때 적용하지 않는 규정은 특구계획에 포함해야 한다.
두 안 공통의 제16조 수요응답형 규제유예는 특구기관이나 신청권자가 규제 법령의 효력을 일정 기간 배제하거나 완화해 달라고 신청하는 제도다. 대상에서 법률은 제외되고, 규제합리화위원회가 국민의 생명·건강·안전과 환경을 저해하는지 고려해 심의·의결한다. 그러나 안전 기준의 세부는 흔히 시행령과 시행규칙 같은 하위법령에 담기고, 유예의 부여 기준과 절차는 다시 대통령령에 맡겨져 있다. 식품 표시기준을 지방자치단체장이 식품의약품안전처장과 협의해 따로 고시하게 하는 박상혁안 제95조(최기상안 제92조), 화장품 책임판매관리자를 두지 않을 수 있게 하는 박상혁안 제100조(최기상안 제97조)처럼 아동이 먹고 쓰는 물건에 닿는 특례도 있다.
이 모든 절차를 집행하는 공무원에 대해서는 박상혁안 제257조(최기상안 제251조)가 적극행정 면책을 마련한다. 규제합리화위원회나 지방시대위원회의 심의·의결대로 업무를 처리하면 적극행정 면책 요건을 충족한 것으로 추정하고 징계 의결을 하지 않는다. 책임보험 가입(박상혁안 제256조, 최기상안 제250조)과 위험방지조치 및 규제특례 취소(박상혁안 제255조, 최기상안 제249조) 조항도 있지만, 보험은 사고가 난 뒤의 장치다.
아동의 몸에 한 번 일어난 피해는 되돌릴 수 없다. 우리가 아는 제품 안전과 환경 기준은 대부분 아동이 먼저 다치고 병들고 생명을 잃은 뒤에야 만들어졌다. 앞서 인용한 일반논평 제69항이 말하는 사전예방원칙은 그 경험의 요약이다. 특례를 신청하는 단계에서 아동의 안전은 누가, 어떤 기준으로 검토하는가. 법안은 그 기준을 대통령령에 맡기고 있고, 거기에도 ‘아동’이라는 말은 없다.
다섯째, 법을 만드는 과정에 아동과 양육자는 없었다
법안은 박상혁안이 264개 조, 최기상안이 258개 조에 이른다. 노동, 환경, 에너지, 교육, 의료, 안전, 토지에 걸친 이 법의 영향을 지역 주민과 양육자가 파악하고 의견을 내기에는 시간도 정보도 부족하다. 노동계는 초안이 100일 넘게 공개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사회적 대화가 진행되는 중에 노동 특례를 담은 박상혁안이 발의된 것을 ‘선입법 후논의’라고 비판한다. 법안을 구하려 해도 구하지 못하다가 발의 직전에야 서로 다른 버전이 돌기 시작했다는 시민사회 활동가의 말도 있다. 소관 상임위원회를 두고도 민주당은 국무조정실이 관장하는 법이라 정무위원회 소관이라 하고, 국민의힘은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가 맡아야 한다며 ‘상임위 쇼핑’이라고 비판해 왔다. 게다가 국정감사 기간에 법안이 발의됐다.
한병도 원내대표는 발의 당일 각계의 목소리를 폭넓게 듣고 병합 심사를 통해 최종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 약속의 무게는 법안이 의견을 듣는 방식에서 가늠된다. 두 안 공통의 제9조제3항은 신청권자가 특구계획을 20일 이상 공고하고 공청회를 열어 계획에 포함된 지역 내 주민과 기업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고 정한다. 재생에너지특별선도단지는 개발계획을 20일 이상 공고하고 '공청회 또는 설명회'를 열어 의견을 들으면 되고(박상혁안 제177조, 최기상안 제171조), 특구 변경은 경미한 사항이면 공청회를 열지 않아도 된다(제13조, 두 안 공통). 모두 계획이 수립된 이후 절차이고, 들은 의견을 어떻게 반영할지는 법안에 들어 있지 않다.
더 큰 문제는 의견을 듣는 대상이다. 박상혁안과 최기상안 어느 쪽의 조문에도 ‘아동’이라는 단어가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즉 아동의 의견을 듣는 절차도, 아동에게 미치는 영향을 사전에 평가하는 절차도 두 안에는 없다. 앞서 인용한 일반논평 제26호는 환경 정책에서 아동의 참여권과 피청취권이 더 과감하고 효과적인 환경 정책을 가능하게 한다고 본다(제8항). 264개 조 규모의 법을 며칠 만에 읽고, 해석하고 의견을 낼 수 있는 양육자가 있을까? 속도가 목적이 된 입법에서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은 말할 기회가 가장 적은 이들의 목소리다.
여섯째, 법 위에 법을 세우는 초법적 특례법은 국회 스스로 입법권을 허무는 일이다
이 법의 문제는 아동에게 닿는 개별 조항에서 그치지 않는다. 법체계 자체의 문제다. 박상혁안은 264개 조 가운데 125개 조문이, 최기상안은 258개 조 가운데 120개 조문이 ‘~에도 불구하고’를 담고 있다. 대통령령에 위임하거나 대통령령을 언급하는 조문도 박상혁안 123개, 최기상안 119개다. 국회가 오랜 시간 쌓아 온 환경, 안전, 노동, 교육, 의료 관련 법률의 절차와 기준을 이 법이 ‘불구하고’로 우회하고, 그 세부는 행정부에 넘기는 구조다.
조문이 그 구조를 보여 준다. 제4조(두 안 공통)는 이 법의 규제특례를 다른 법률에 우선해 적용하게 하고, 특구전략사업에 관한 법률을 새로 만들거나 고칠 때는 이 법의 목적과 기본원칙에 맞도록 하라고 정한다. 후속 국회가 만들 법률의 방향까지 미리 정해 두려는 규정이다. 박상혁안 제126조(최기상안 제123조)는 지방자치단체장이 법률의 규정 네 개를 적용하지 않을 수 있게 하고, 제15조(두 안 공통)는 관계기관이 30일 안에 회신하지 않으면 허가가 필요 없는 것으로 본다. 국회가 만든 법률의 적용 여부를 행정기관의 판단과 침묵에 맡기는 조항들이다.
민주당이 초법적인 특례법을 들고 나온 것이 처음은 아니다. 2020년 11월 26일 한정애 의원 대표발의로 민주당 의원 136명이 이름을 올려 제출된 가덕도신공항 건설을 위한 특별법은 사전 용역과 예비타당성조사 같은 의무 사전절차를 건너뛸 수 있게 하는 내용을 담았다. 국민의힘도 별도의 특별법을 발의하고 상임위 합의 처리에 나섰다. 가덕도특별법은 2021년 2월 26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같은 해 4월 7일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40일 남기고 단지 선거 결과를 위해 거대 양당이 한마음으로 법체계를 유린했다. 2022년 4월 공개된 국토교통부의 사전타당성 검토 연구 최종보고서에서 비용편익비율은 0.41~0.58로 보도됐다. 법치주의고 뭐고 눈에 뵈는 거 없는 정당들이 선거 지상주의에 매몰돼 만든 가덕도특별법의 결과다.
이와 같은 초법적인 특례법은 헌법의 원칙과 충돌할 소지가 크다. 법률은 모든 사람에게 같은 기준으로 적용되는 일반적 규범이어야 하는데, 이 법은 특정 지역과 특정 기업에 한해 일반 법률의 절차를 비켜 가게 한다. 법률로 정해야 할 중요한 사항을 대통령령과 위원회, 지방자치단체장에게 넘기는 것은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스스로 입법권을 내려놓는 일이다. 법치주의는 권력이 법의 틀 안에서 행사될 때 성립한다. 법의 틀 자체를 사업별로 바꾸는 특례법이 되풀이되면 그 틀은 남아나지 않는다. 초광역특구법 역시 법치주의와 평등원칙, 의회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악법이다.
국회가 입법기관으로 존재하는 이유는 법률을 만들고, 만든 법률이 지켜지게 하는 데 있다. 그런데 이 법은 국회가 만든 법률을 ‘불구하고’로 무력화하고, 그 적용 판단을 행정기관에 넘긴다. 정부가 마련한 법안 조문이 당정협의에서 보고됐고, 여당 정무위 간사가 의원입법으로 대표 발의했다. 입법기관이 스스로 입법의 기준을 허무는 이 일은 국회와 국회의원이 자기 존재 이유를 흔드는 누워서 침 뱉기이며, 우리는 이를 입법 쿠데타라고 부른다.
법치주의는 목소리가 가장 작은 이들의 마지막 안전망이다. 아직 투표권도 발언권도 없는 아동과 미래세대는 국회가 만든 법률의 절차에 기대어 자신의 안전과 환경을 지킨다. 그 절차를 사업과 지역에 따라 건너뛰는 법이 늘어날수록 가장 먼저 잃는 것은 이들이다. 국회는 법 위에 법을 세우는 특례 입법을 멈추고, 법률의 일반적 절차 안에서 지방소멸을 막아야 한다.
일곱째, 12월 3일 시행되는 생명안전기본법을 스스로 부정하는 법이다
지난 6월 2일, 세월호 참사 12년 만에 생명안전기본법이 공포되어 12월 3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이 법은 세월호 참사 유가족, 이태원 참사 유가족, 산재 피해 유가족 등 참사 피해자들과 공익활동가, 공익법률가들이 함께 만들었다. 2020년 11월 처음 발의된 법안은 21대 국회에서 심의 한 번 없이 폐기됐지만, 국민동의청원과 국회 앞 농성으로 포기하지 않았고, 22대 국회에서 2025년 3월 다시 발의된 법안은 2026년 5월 7일 본회의에서 재석 191명 중 찬성 188명으로 가결됐다. 참사 피해자들이 12년 동안 거리에서 싸워 얻은 결과다.
이 법은 ‘안전하게 살 권리’를 모든 사람의 기본권으로 명시하고, 피해자를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권리의 주체로 규정해 13개 권리를 보장한다. 대통령 소속 국민생명안전위원회가 산업재해, 자연재난, 교통사고, 어린이 안전사고를 총괄하고, 독립적 상설 조사기구인 국가안전사고조사위원회가 설치된다. 무엇보다 중앙·지방정부가 법령을 만들거나 계획·사업을 추진할 때 안전에 미치는 영향을 미리 분석·평가하는 안전영향 분석·평가제도를 도입했다.
그런데 시행을 44일 앞둔 10월 20일, 민주당은 초광역특구법을 발의했다. 집권여당이 국정과제로 내세웠던 법이 시행되기도 전에, 같은 집권여당이 안전 규제를 ‘~에도 불구하고’로 비켜 가고, 환경영향평가의 협의기간을 정하고, 규제 신속확인에서 침묵을 허가로 간주하게 하는 법을 냈다. 박상혁안과 최기상안 어느 쪽에도 ‘생명안전’, ‘안전권’, ‘안전영향’이라는 말은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생명안전기본법 제6조제2항은 안전 관련 법령을 만들 때 모든 사람에게 실질적인 참여와 안전 정보접근을 차별 없이 보장하도록 정하고 있다. 즉 초광역특구법은 지방을 살린다면서 발의 전에 지역 주민의 의견도 듣지 않고 깜깜이로 낸 법안이다. 아동, 양육자, 노동자가 의견을 낼 기회조차 주지 않았고 안전도 미래 환경 영향도 외면한 이 법은 폐기됨이 마땅하다. 말로는 지방소멸을 막겠다지만 결국 기업의 편의와 이윤을 위해 노동자의 휴식과 돌봄의 시간까지 빼앗으려는 초광역특구법은 생명안전기본권과 양립할 수 없다.
우리는 요구한다.
1. 초광역특구법안(박상혁안, 최기상안)과 연계 개정안 3건을 철회하고 폐기하라.
2. 지방소멸 대응과 균형발전은 환경 파괴와 기후 대응에 역행하지 않는 방식으로, 지역 주민과 아동, 미래세대, 양육자가 참여하는 충분한 공론 절차를 거쳐 법률의 일반적 절차 안에서 다시 설계하라.
국민은 한 입으로 두 말하는 정부여당을 신뢰할 수 없고, 지지를 철회할 것이다. 지방의 위기를 선거 유불리에 악용하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가볍게 여기는 정부여당은 유권자의 심판, 역사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지방이 소멸해서는 안 된다. 지방에 고통을 전가해서도 안 된다. 하지만 지방을 살린다는 이름으로 아동의 안전과 미래를 내줄 수는 없다. 초광역특구법 백지화하라!
2026년 10월 23일
정치하는엄마들
※ 현재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는 박상혁안과 최기상안이 등재되지 않았으므로, 발의 직후 시중에 돌고 있는 비공식본(박상혁안 264개 조, 최기상안 258개 조)을 대조해서 작성했다. 조문 번호는 박상혁안을 기준으로 하고, 최기상안의 번호가 다르면 괄호로 병기한다. 두 안에서 번호와 내용이 같으면 ‘두 안 공통’이라고 적는다. 최기상안에는 박상혁안의 제61·62·72조(외국의료기관, 외국인전용약국, 외국인학교 입학자격)와 제132~134조(근로시간·선택근로제·기간제 특례)가 없다.